잔인하고도 슬픈 5월이었다. 올해의 5월은 화물연대 故 박종태 열사의 부고로부터 시작되었다. 전국의 노동자들은 슬픔과 비통함으로 몸부림쳤다. 2중 3중의 착취의 거미줄에 엉켜 하루에 열다섯 시간 일을 해도 어려운 사람들.
꼬박 꼬박 세금을 내면서도 국가로부터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 故 박종태 열사의 죽음은 약속을 저버리고 노조파괴에 혈안이 된 대한통운과 금호아시아나 그룹, 살기 위한 몸부림을 무자비한 탄압과 수배령으로, 벼랑 끝으로 몰고 간 경찰, 죽음과 외침의 목소리보다는 만장깃대를 죽창으로 호도한 언론, 국민보다는 ‘기업 프렌들리’에 목을 매고 있는 MB정부가 합작해서 빚어낸 학살극이었다.
잔인한 5월, 어두운 죽음의 시대
그리고 며칠 후, 노무현 前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많은 국민들께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비통해 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지난 1년 동안 MB정권이 저지른 피비린내 나는 망나니짓이 가져온 또 하나의 예고된 희생이 아니었던가? 그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 전 국민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뿐. 박종태의 의미를 노무현의 죽음으로 더 많은 국민들이 비로소 그 이유를 깨달았을 뿐. 이 ‘어두운 죽음의 시대’를 불러온 죽음의 칼날은 하나가 아니었던가?
우리는 지난 1991년을 기억한다. 강경대, 박승희를 시작으로 얼마나 많은 열사들을 떠나보내야 했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가 치러진 그날, 또 한명의 여린 목숨이 꺼져갔고, 이미 그 이전부터 강원도와 충청도의 산골에서 들려오는 민초들의 소리 없는 죽음의 비명을 듣지 않았었는가? 앞으로도 훤히 보이는 수많은 생명들의 희생을 어찌 막을 것인가? 저 망나니들의 미친 칼부림을 누가 멈추게 할 것인가?
이제 우리는 눈물을 거두고 다시 서야한다.
아직도 눈을 감지 못하고 영결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故 박종태의 염원 앞에 서야한다. 노무현의 희생을 단순히 언론이나 검찰의 실책이 빚어낸 억울함으로 치부하지 말라. 노무현과 박종태의 희생은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거룩하고 의로운 결단이기 때문이다.
미안함으로 슬퍼만 하지도 말라. 그러기에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 처절하고 절박하지 아니한가? 대한통운, 로케트전기, 쌍용차에서 벌어지고 있는 죽음의 몸짓들을 보라. 그들은 한 사람이 전체 임금노동자의 30명, 비정규직의 100명에 해당하는 연봉을 받으면서도 모든 책임과 희생을 일방적으로 감내하라 한다. 이미 상하위 계층의 격차가 10배에 이르고 있는 불균형의 대한민국은 수천만의 국민들을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절망의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희망의 6월, 사람 사는 세상 위해
고인이 된 두 분의 생의 끝자락의 바람은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만인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민주주의, 분열과 전쟁을 마감하고 화합하고 협력하여 세계 으뜸의 평화로운 통일 민족, 그 어떤 외세의 침략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은 자주적인 나라. 그분들이 목숨을 던져서라도 보고 싶어 하던 그 세상이 곧 우리가 그토록 꿈꾸던 그 희망의 나라가 아니었던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박종태를 키워낸 자랑스런 광주시민이 마땅히 해야 할 영광스러운 숙제가 아니겠는가?
슬픔의 5월은 보내고 희망의 6월은 그렇게 시작되어야 한다.
기사작성일: 2009-06-05 (시민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