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기는 가슴안고 사라졌던 / 이땅의 피울음 있다
부둥킨 두 팔에 솟아나는 / 하얀 옷의 핏줄기 있다.”
20여년 전,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모여든 작은 동아리에서 불리워진 노래가 새삼스레 떠오른다. “비싼 등록금 대느라 부모들은 쌔빠지게 일하는 데 너희들은 데모나 하느냐”는 어르신들의 비판이 따가웠지만 가슴 속 한구석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어쩔 수 없었다.
대부분 서민의 자식이기에 그 부모님들의 고통과 원인에 대해 더욱 치열한 고민을 하게 되고, 그 원인이 결코 부모님들 개인의 게으름이나 무능력 탓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임을 정확히 깨닫고 있었다.
그러한 깨달음은 젊은 양심에 불을 붙이게 되고, 한번 불붙은 청춘의 심장들이 들불처럼 타올라 광장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 꽃 피운 청춘의 양심
그것이 진정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이며, 부모님과 나를 낳고 그리고 나의 후대를 키워줄 조국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는 것임을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작은 몸짓들이 결국 87년 6월 항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군부독재를 역사의 저편으로 물러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 토대 위에 지난 20년 동안의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다. 대통령 직선제와 지방자치를 통해 참여민주주의가 싹이 트고 청와대와 정부에 집중된 독재권력이 분산되었다. 경제도 안정되고 발전되었다. 노조가 생기면 망한다던 재벌들이 오히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지난 20년 동안 최대의 호황을 누렸다.
호사다마(好事多魔) 라 했던가?
군부독재가 물러간 자리에는 어느새 독점재벌이 들어서고 있었다. 삼성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독점자본은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미 넘어가있던 국회로부터 최고 권력기관인 청와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국가정보원, 그리고 검찰과 언론까지 모든 권력기관들이 그들의 손아귀에서 놀고 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이 나라를 주무르는 그들 위에서 그들을 주무르는 외세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촛불 든 어린 학생들 손 받쳐야
삼성재벌을 비롯해 90%이상의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미국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이제 한미FTA를 통해 의료, 교육, 식량, 운수 등 국가의 전략적 근간이 되는 기간산업이 통째로 그들에게 넘어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여기에다 몇 달 전에는 그들로부터 나라의 이익과 주권을 지켜야할 정권마저도 국가를 돈 버는 회사로 여기고 국민들을 한낱 종업원쯤으로 여기는 사람들 손으로 넘어간 것은 더욱 큰 마(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10대의 어린 청소년들이 촛불을 들고 들판에 서고 있다. 20년 전과는 달리 생존경쟁에 내몰려 최소한의 낭만조차도 잃어버린 대학생 형들을 대신하여 그저 어린애쯤으로 여겼던 학생들이 광장으로 나서고 있다.
그것이 희망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우리가 저지른 잘못과 책임을 맡겨둘 수는 없다.
다시 서야 한다. 저 어린 학생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싸우다 돌아가신 5.18 영령들과 애국영령들께 바치는 최소한의 예의다.
기사작성일: 2008-05-22 (시민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