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사회에 있어서는 생존 자체가 주로 자연과의 투쟁이었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 후 조금은 먹고 살만해져서 남은 것을 보관하기도 하고 , 집단사회가 커지면서부터 권력과 부가 일부 소수 지배계급의 전유물이 되었고 비로소 인권의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부족해도 서로 나누어 먹던 원시사회가 더 행복했을 수도 있다. 아니 불과 몇 십 년 전 어린 시절만 돌아보더라도 동네에 부자나 권세부리는 집이 꼭 한둘 있었지만, 그 집안 편한 날 없었고 동네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자식 하나 남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못가지고 힘 없는 대다수의 동네 사람들끼리는 떡도 나누고, 김치도 나누고, 밭일도 나누고, 모내기도 나누고 하면서 오순도순 살다가 명절 때면 또 한판 어우러져 사람답게 살았었다.
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봉건시대와는 달리 자본주의는 전 세계적 규모에서 민족이나 국가 단위의 권력기구가 등장하고 국가나 집단 또는 개인의 폭력으로부터 국가나 집단 또는 개인의 권리를 지키고자하는 민주주의와 사법제도가 발달하면서 인권의 문제는 그 나라의 발전정도를 측정하는 바로미터(barometer)가 돼 왔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가깝게는 나라를 잃어버린 민족에게 인권이 있었던가? 독재 시대에 인권은 있었던가? 우리나라에서도 인권은 87년 6월 항쟁 이후 피로 쟁취한 민주주의 시대 이후에서야 비로소 언급되고 확장돼 국민의 정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국가적 차원의 인권보호와 제도가 마련되었다. 그것이 바로 국가인권위원회이다. 그런데 불과 십년 만에 이것을 무력화 하고자하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일하는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동안 인권위원회는 비정규직과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일상적 인권침해에 대한 감시자요, 사법적 처리에 있어서 든든한 후원자로서 한줄기 희망의 빛이요, 비빌 언덕이 돼 왔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에게 분명히 일러줄 말이 있다. 부자들을 위한 정부이니 그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을 지탱하며 힘겹게 버티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망을 빼앗아 간다면 그것은 결국 그 위에 앉아 있는 모든 부자나 권력자들 조차도 사정없이 땅바닥으로 내팽개쳐지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바로미터(barometer)의 본디 뜻은 공기압을 재는 측정기구라 한다. 민심은 공기와 같다. 권력자들의 눈에는 잘 안보이고 손에도 안 잡히니 하찮게 여길지 모르나 압박이 심하면 반드시 터지고 모든 것을 날려 버린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한나라의 인권상황을 나타내는 바로미터이다.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독재자의 이름으로 역사에 새겨지고 싶지 않다면 제발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말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명등룡 <광주비정규직센터 소장>
기사작성일: 2009-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