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 32조에서는 모든 국민의 근로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며, 근로기준법 제 9조에서는 근로자에 대한 중간착취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노동자의 직업안정을 위해 정부가 고용대책을 마련하고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제 3자가 개입하여 중간착취를 하지 못하도록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이 바로 「직업안정법」입니다.
90년대 중반까지 「직업안정법」은 구직자와 구인자를 알선해주고 근로계약이 성사되는 대가로 사용자와 노동자에게 수수료를 받는 ‘유료소개업’에 엄격히 제한해 왔습니다. 유료소개업은 ‘노동자의 임금을 저해시킬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직업안정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IMF외환위기 이후 상황은 많이 변화했습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노동유연화 전략을 천명하면서 「직업안정법」상 민간인력업체에 대한 규제를 줄이고 사용자의 의무를 완화시켜주거나 회피할 수 있도록 법적인 예외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유료직업소개를 금지하고 있던 「직업안정법」이 개정되며 유료소개업이 활개를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2009년 MB정부가 ‘직업안정법’을 대대적으로 개정합니다. 직업소개와 모집에 대한 구분을 폐지하고, 회비 등의 형태로 구직자에 대한 금품수수를 허용하고, 수수료 상한제를 폐지함과 동시에 직업소개업체가 근로기준법 등 운영원칙위반 했을 경우에 주는 벌칙은 완화합니다. 그 결과 민간 직업소개소는 10년동안 1700개에서 6700여개로 4배 이상 증가합니다. 반면, 공공직업소개소는 오히려 감소하고 맙니다.
민간직업소개소의 ‘이윤창출’은 노동자들의 실업을 통해 유지한다.
민간직업소개소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들의 이윤이 노동자들의 실업을 통해서만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민간 중개업체가 자신의 이윤을 높이기 위해서는 직업소개 및 근로자 공급을 위한 상시적인 유휴인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민간 중개업체는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실업상태에 빠지게 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도록 고용환경 자체를 장기안정적 일자리보다는 단기 임시직 일자리로 변화시키는데 매진합니다.
실제로 그동안 민간직업소개소가 노동자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한 사례는 극소수입니다. 지난 10년간 민간직업소개소의 실적은 97%가 모두 일용직이었습니다. 2007년에는 직업소개를 해준 710만명의 노동자 중 700만여명이 모두 일용직이었습니다. 노동자가 좋은 직장에 가는 것보다는 자주자주 찾아와야 자신들이 수수료를 더욱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간직업소개소는 결코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이나 고용조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복합고용서비스 시장 창출이라는 새빨간 거짓말
상황이 이러한데 MB정부는 “직업안정은 구시대적이고 소극적인 개념”이라며 뜬금없이 「직업안정법」 전면개정안을 들고 나왔습니다. 바로 「고용서비스 활성화법」입니다. “직업소개시장을 보니, 공공직업소개소는 찾아보기도 힘들고, 민간직업소개소가 많으니 아예 전문화 시켜주자.”고 합니다.
먼저 ‘직업안정’이란 법 목적을 지우고, ‘고용서비스 활성화와 시장화’를 위해 민간부문을 정부와 동등하게 취급한다고 합니다. 또한 직업소개소가 이제는 직업소개뿐만 아니라 직업훈련과 파견 등 모든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허용해주겠다고 합니다. 민간업체의 수익을 위해 구인자 수수료 상한도 폐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공 고용서비스 분야 역시 대거 민간위탁을 하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복합고용서비스업’이라는 새로운 노동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직업안정법은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보호에 대한 정부의 의무를 규정해왔습니다. 그런데 개정법안은 민간 노동력 중개업체를 앞세워 정부의 책무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 법이 통과된다면 더 이상 사용자-근로자의 개념은 무의미해집니다. 나는 분명히 일하고 있지만 나를 사용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직업소개업과 파견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기업의 인사관리는 모두 외주화 될 것입니다. 민간 업체 A을 통해 제조업 생산라인에 취직을 했습니다. 기업의 필요에 의해 실직을 하게 되면, 다시 민간업체 A로 돌아가 다른 직업훈련을 받고 집에서 쉬다가 콜센터 B에 취직을 하게 됩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1개월을 단위로 사업장을 전전하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로 노동자들의 임금이 적어질 것입니다. 법에서는 사용자에게 받는 수수료를 자율화 하고 구직자의 수수료를 금지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직업소개요금을 누구한테 받아가는 것인지 애매합니다. 사용자는 기존의 인건비를 초과 부담하여 민간 중개업체를 활용할 까닭이 없기 때문에 결국 수수료 부담은 노동자의 몫에서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내는 회비․부가서비스 수수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조금 심각하게 이야기를 해보자면, 대한민국의 노동자들 중 다수는 이제 더 이상 안정된 직장을 가질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민간 노동력 중개시장이 활성화 되고, 노동자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수수료 수입을 창출하려면 사업장 밖에 상시적으로 언제든지 공급할 인력을 확보해야할 뿐만 아니라 사업장 내부에 다수 존재해야 합니다. 인력 중개 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안정적 일자리가 아닌 단기임시직 불안정 일자리. 필수적으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전제합니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민간 고용서비스 활성화 전략, 「직업안정법」의 전면 개정은 ‘노동시장 유연화’의 귀결점입니다.
MB, 이제 뻔 한 거짓말은 그만둬야
이명박 정부, 방향을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았습니다. 진정 노동자들의 고용을 안정화 시키고 노동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우후죽순 운영되고 있는 민간업체들에 대한 감리․감독을 강화하고, 고용노동부를 필두로 하여 공공직업소개소의 역량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무규제적인 시장화의 결과가 바로 ‘직업소개 실적중 일용직 98%’입니다. 무조건적인 시장화는 오히려 사회에 독이 될 뿐입니다.
「직업안정법」 전면 개정안은 오직 기업의 운영 수월화를 위해 추진되는 노동유연화의 핵심 전략일 뿐입니다. 지금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복합고용서비스 시장’이 아니라 적정한 임금과 고용조건을 보장하는 안정된 일자리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당장 청년실업에 허덕이는 20대와 가짜 사장들에게 시달리는 비정규직들에게 ‘복합고용서비스 시장’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 할 수 있다는 거짓말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 민중의 소리 -